중종 가계도

중종과 단경왕후

조선의 11대 왕, 중종-. 폭군 연산을 몰아낸 반정세력은 연산의 이복동생인 진성대군 (중종)을 왕으로 추대합니다. 이를 ‘중종반정(中宗反正)’이라고 칭하다보니 중종이 주도해서 반정을 일으킨 것 같지만 실제로는 본인은 왕이 될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당연히, 대군 시절 연을 맺은 그의 아내, 단경왕후 신씨 역시 중전마마가 될 줄은 몰랐을 것입니다. 문제는 단경왕후 신씨가 연산군의 측근이었던 신수근의 딸이라는 사실입니다. 연산군의 처조카이기도 합니다.

반정 세력은 폐위된 왕을 지근거리에서 모셨던 신하의 딸을 중전으로 인정할 수 없기에 중전을 끌어 내리려 합니다. 결국, 신씨는 중전이 된지 일주일만에 폐위됩니다. 박민영이 출연했던 사극 ‘7일의 왕비’의 주요 소재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아무 잘못도 없이 쫓겨난 폐비는 훗날 영조 때가 되어서야 복위가 되었고, 이 때에 비로소 ‘단경왕후’라는 시호를 부여 받게 됩니다.

장경왕후 윤씨와 인종

그리고 그 빈자리는 장경왕후 윤씨가 이어 받습니다. 훗날 인종의 생모입니다. 중전의 자리에는 9년 정도 있었으나 인종을 낳자마자 산후병으로 바로 숨을 거둡니다.

인종이 태어난 해가 1515년, 세자 책봉된 해가 1520년이고, 왕위에 오른 해가 1544년이니, 24년간 짧지 않은 기간 세자로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인종이 세자 기간중, 새로이 중전의 자리에 오른 문정왕후는 본인이 낳은 아들을 왕위에 앉히기 위해 세자를 괴롭힙니다.

설상가상 선왕의 장례를 치루며 몸이 쇠약해진 인종-. 즉위 후 1년도 되지 않아 숨을 거두게 됩니다. 계모 문정왕후는 대비마마가 되어 있었고, 그녀가 낳은 이복동생, 훗날 명종은 11살이 되었습니다.

문정왕후 윤씨와 명종

궐 안에서 가장 큰 어른이 된 문정왕후-. 결국 목표한대로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만드는데 성공합니다. 조선 13대왕 명종입니다.

그러나, 명종이 즉위했을 때의 나이가 고작 12세-. 나이가 어리다보니, 문정왕후는 아무런 부담(?)없이 수렴청정을 하며 최고 권력자가 됩니다. 동시에 그녀의 남동생이자 왕의 외삼촌 윤원형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며 외척 세력에 의한 국정 농단이 시작됩니다. 모든 민원(?)은 윤원형과 정난정을 통하면 해결이 됩니다. 참고로, 정난정은 윤원형의 첩입니다.

중종은 두 번째 왕비였던 장경왕후와 함께 경기도 고양에 위치한 서삼릉에 묻혔으나, 문정왕후는 본인의 사후(死後) 남편 중종의 옆에 묻히고 싶은 나머지 중종의 무덤만 현재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선정릉으로 옮겨 놨습니다.

그러나, 정작 문정왕후는 서울 동북쪽에 갈비가 유명한 곳, 태릉에 묘소가 마련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중종과 같이 묻히지는 못했지만 전(前) 부인 장경왕후와는 갈라놨으니 절반의 성공이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참고로, 태릉은 조선의 문정왕후(명종의 어머니)의 능이 위치한 곳으로, 조선시대부터 왕실의 제사와 관련된 행사가 자주 열렸습니다. 제례 의식을 위해 많은 인력이 동원되었으며, 이를 위한 음식 준비도 필수적이었습니다. 왕실 제사 음식 문화가 발전하면서 자연스럽게 고기 요리, 특히 갈비와 같은 육류 요리가 주목 받게 되었습니다.

에필로그, 창빈안씨와 덕흥대원군

중종의 후궁 중, 창빈안씨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녀의 손자가 조선의 왕좌에 오르기 때문입니다. 명종의 아들 순회세자가 요절하는 바람에 중종의 후궁이었던 창빈안씨의 손자 하성군에게 기회가 돌아갑니다. 하성군은 조선 14대왕 선조입니다.

창빈안씨의 아들이자 선조의 부친인 덕흥군은 ‘덕흥대원군’으로 추존됩니다. 이는 조선에서 처음으로 ‘대원군’ 칭호를 받은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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